“여보, 당신이 있어 지난 23년이 행복했어요.”

6월 4일로 결혼 26년을 맞았다. 난 그 가운데 올해로 23년을 전신마비로 꼼짝 못한 채 남편과 딸아이의 손과 발을 빌려 살고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병든 아내를 버리지 않고 손수 보살피며 살아 주는 남편이 고맙고, 내 손으로 무엇 하나 해 준 것도 없는데 곱고 바르게 자라 준 내 사랑하는 딸이 있어 또 감사한다. 

1977년 6월 친구 소개로 만나 한눈에 반해 결혼한 우리는 그 이듬해 딸을 낳고 세상을 다 얻은 양 행복했다. 그 세월도 잠시 결혼 3년째 둘째아이를 임신했는데, 임신 7개월이 될 때까지 입덧이 너무 심해 물 한 모금도 넘기기 힘들었다. 하지만, 주위 어르신들이 남들 다 하는 입덧이니 괜찮다고 하셔서 참고 견뎠다. 

그런데 정말 미련이 화를 불렀다. 어느 새벽 잠자리에서 갑자기 숨이 차고 가슴에 통증이 오는가 싶더니 곧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남편이 축 늘어진 나를 안고 병원에 가니 병원에서는 이미 늦은 것 같다며 되돌아가라고 했단다. 하지만 남편은 진찰만이라도 받아 보게 해 달라고 매달렸고, 진단 결과 심장판막증에다 뇌혈전증까지 겹쳐 있었다. 중풍이 내게 찾아온 것이었다.

난 혼수상태로 한 달여를 누워 있다 정신이 돌아왔는데, 깨어나긴 했으나 내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거라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왼손 하나뿐이었다. 대소변이 나오는지도 모르는 나를 남편이 옆에서 24시간 기저귀 갈아 주고 씻겨 주고 먹여 주고, 고무 호스로 가래 뽑아 주고…. 

나는 그야말로 숨만 쉬는 사람, 건강할 때 텔레비전에서 무심히 보아 넘겼던 산소호흡기 꽂고 나무 둥치처럼 눈만 뜨고 누워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입원 석 달 만에 겨우 차도가 있자 그때까지 뱃속에 있던 아기를 제왕절개 수술을 해 낳았다. 하지만 우리 예쁜 둘째는 독한 약과 주사를 이기지 못해 죽어 있었다.

내가 퇴원한 뒤에도 남편은 나와 딸아이한테 발이 묶여 밖에 나가 일을 한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아이를 등에 업고 집과 대리점을 오가며 우유 배달을 시작했다. 일 년쯤 지나자 남편의 성실함을 인정한 대리점 사장님이 남편에게 소장 일을 주었다.

그러나 직책이 무거운 만큼 점점 밖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남편은 미련 없이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고, 내 병수발도 하며 집안살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겼다. 그렇게 시골 돼지 농장에 취직하면서 부산에서 이곳 김해로 이사했다. 수입이 적은 만큼 남편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공사장 막노동일, 양계장 청소일, 용접일, 계란장사…, 지금은 가게마다 부식을 대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남편이 너무 안쓰럽고 또 미안해 그를 놓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 그만 나를 버리고 좋은 사람 만나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를 울면서 부탁했다. 하지만 남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내 생일이면 내가 좋아하는 팥을 넣어 밥을 정성껏 짓고 미역국을 끓여 생일상 차리는 일을 지금껏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을 만큼 나에게 헌신적이다. 결혼하고 겨우 3년 아내가 차려 주는 밥상을 받고 그 몇 곱절도 넘는 세월 동안 손수 상을 차리면서도 내 생일상을 한 번도 잊지 않는 남편 앞에서 난 그저 고맙고 눈물만 흐를 뿐이다. 

그렇게 힘든 가운데도 내가 쓰러질 때 젖먹이였던 딸아이를 스물다섯의 어엿한 숙녀로 잘 키워 주었다. 부산에서 건축설계사 일을 하는 딸아이는 주말마다 집에 오면서 일주일치 내 간식거리를 챙겨 와서는 내 손이 닿는 곳에 잘 풀어 놓아둔다. 그리고 점심시간마다 전화해 밥은 잘 먹었는지, 뭐 먹고 싶은 건 없는지 물으며 내 말동무가 되어 준다. 옷 한번 곱게 사 입혀 주지 못하고, 머리 한번 단정히 빗겨 주지 못한 못난 엄마인데도 딸아이는 내게 받지도 못한 사랑을 더 크게 돌려주고 있다.

오늘도 남편은 새벽 4시에 나가 물건을 받아 거래처 몇 군데에 넣어 주고 10시쯤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쌀을 씻어 안쳤다. 밑반찬 한두 가지 앞에 놓고 남편과 나는 아침 겸 점심을 숨가쁘게 먹고 남편은 내 요강을 비워 주고는 주차 관리 일을 하러 서둘러 나갔다. 그렇게 가면 밤 9시가 넘어서야 집에 와 우린 저녁상을 마주한다.

바쁜 일상에 쫓기느라 곰살가운 애정 표현은 잊은 지 오래지만 난 남편의 마음을 안다. 신제품 과자가 나올 때마다 바깥출입을 전혀 못하는 나를 위해 “한번 먹어 봐라. 새로 나온 것 같던데 맛있더라” 하며 내 앞에 놓아 주는 남편. 그보다 더 다정한 사랑 표현이 어디 있겠는가!


필자 : 박윤지님 (가명) 
출처 : 월간《좋은생각》 2002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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